한국어능력시험을 보다 _ 시험 시작 전까지
2025년 2월 15일 토요일 제 83회 KBS한국어능력시험을 봤다. 시험을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30년전 대학원 시절일까? 하여튼 내가 가장 나이 많은 응시생이 아닐까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한 문제 한 문제 풀었다.
시험 전날 연필 세 자루와 지우개를 수험표 위에 올려두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보니 필통이 필요했다. 연필심을 유지하려면 필통이 필요한데. 급한대로 연필 세 자루와 지우개를 봉투에 담았고 미리 찾아둔 기계식 시계를 차고 출발했다.
회사에서 멀지 않은 선린중학교에서 봤는데 숙대 뒤편이어서 찾아가기 어렵지 않았다. 9시30분까지 모두 입실을 완료해야 한다고 하여 9시 도착을 목표로 출발했더니 숙대앞에 오전 8시 30분에 도착했다. 대학캠퍼스 앞 거리답게 토요일 아침에는 고요했다. 커피숍이 열었을 줄 알았는데 스타벅스도 없었다. 대부분은 10시30분이 되어야 오픈이었다. 커피 한 잔하며 정신을 맑게 깨우려던 계획을 위해 GS25에서 커피를 사서 마시며 언덕을 올라갔다.
골목에 들어서니 나와 같은 응시생들이 눈에 띄었다. 운동복(츄리닝) 차림에 배낭을 맨 스타일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도 눈에 띄였고 압도적으로 젊은 여성들이 많았다. 역시 학교 앞에서는 연필과 지우개를 파는 분이 계셨다.
학교 안으로 들어와 건물 문 앞에 도착하니 유리창에 응시자명단이 붙어 있었다. 성명, 수험번호, 생년월일, 고사실이 나열되어 있었다. 내가 가야하는 고사실은 19 교실이었다. 붙여진 지도를 따라 가보니 옆 건물 2층에 있는 교실이다. 교실에 도착한 시간은 9시 5분이었다. 교실 안 칠판에도 오늘 이 교실에서 시험보는 분들 명단과 자리가 배정되어 있었다. 시험이 너무 오랜만이라 아무 자리나 앉았는데 그 고사실 좌석 배치표를 보고 다시 내 자리를 찾아가서 앉았다.
한 교실에서 20명 씩 시험을 보는데 A, B, C, D, E 다섯 줄에 1, 2, 3, 4 네 열이었다. 모두 스무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름을 보니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시험지가 홀수형과 짝수형이 있다고 했는데 자리 배치도 엇갈리게 되어 있었다. 내 수험번호가 홀수였는데 양 옆 자리와 앞 자리 모두 짝수 번호였다.
고사실이 24번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480명 정도가 선린중학교에서 시험을 같이 보는 것 같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연필 세 자루와 지우개를 책상 위에 두고 기계식 시계를 풀어 책상 왼쪽 위에 두었다. 당연히 교실에 시계가 있어도 시계를 보려고 고개를 들어서 감독관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느니 그냥 시간을 보려고 시계를 가져왔다. 나중에 보니 시계를 올려두고 시험을 보는 것은 나 하나인 것 같았다. 당연히 요즘 누가 기계식 시계가 있겠는가? 평소에는 애플워치 울트라를 차는데 전자기기이니 당연히 사용할 수가 없다.
중학교 교실은 정사각형으로 생각보다 작았다. 예전에는 이 안에 70명이 들어갔을텐데. 오늘은 20명이 시험을 보니 이 정도면 쾌적하다. 아마 평소에도 이 교실에는 25명 정도가 있는 것 같다. 교실 뒤에 사물함들이 그 정도 숫자가 놓여 있었다. 뒤 편에 온풍이가 있는데 좀 시끄러웠다. 듣기 평가에 방해가 될 듯 싶었는데 듣기 평가가 시작되니 끄더라.
감독관은 선생인 듯 했다. 중학교 여자 선생님. 아마 오늘은 알바 오신 거겠지. 9시 30분까지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하고 그 이후는 갈 수 없다고 했다. 방송으로 몇 가지 안내를 하며 듣기 평가 상태를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 역시 스무 자리 중에서 9시 30분이 되었는데도 네 자리는 비어있었다. 응시료가 33,000원인데도 보러 오지 않을 수 있다.
9시30분부터는 신분증, 응시원서를 차례로 확인하며 출석을 체크했다. 맞다. 신분증도 꼭 가져가야 한다. 그리고는 답안지를 먼저 나눠주고 답안지에 이름, 수험번호, 생년월일을 적었다. 연필을 갖고 숫자 동그라미 안을 메우면서 칠했다. 감독관이 한 명씩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답안지에 사인을 했다. 답안지는 1번부터 100번까지 각 5개의 동그라미가 있었다. 오지선다 문제다. 그리고는 문제지를 나눠 줬다. 10시가 되기 전에 문제를 들여다보면 부정행위다. 우선은 감독관의 요청에 따라 파본이 아닌지 페이지만 쭉 넘기면서 확인했다.



한국어 능력시험을 보다 _ 듣기 말하기
10시 정각에 듣기 평가부터 시작했다. 25분간 15개의 문제가 출제된다. 시험지를 드디어 펼쳤다. 듣기 평가 오디오가 나오기 전에 먼저 전체 내용을 살펴본다. 오디오를 시작하면 키워드에 집중하기 위해서 주요 키워드라고 생각하는 것에 밑줄을 그었다. 아직 듣기 출제가 시작되지 않아 뒷장인 어휘를 본다. 어휘를 바로 맞출 수 있는 것들이 있어 우선 2개 풀었다. 오디오 문제 출제가 시작되었다. 15개 문제 중 앞의 다섯 개는 몸풀기 수준이다. 매우 쉽다. 다 듣지 않고 풀 수 있기도 해서 뒤의 내용을 다시 읽어 보며 시간을 번다.
조금씩 문제가 어려워 진다. 두 명의 대화를 듣고 이 두 명의 내용으로 맞는 것을 물어보고 다음 문제는 각 화자의 대화 전략을 물어본다. 조금은 생각해야 알 수 있는 문제이고 정확한 답이 헷갈리기도 한다. 5지 선다여서 동그라미를 칠하다보면 답이 5번이 너무 많이 있지 않아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럴 때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듣기에서는 15문제가 25분이라 나머지 95분 동안 85문제를 풀어야 한다. 강제되어 있는 시간 배분이라 듣기하면서 여유가 있으면 뒤의 문제를 푸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점점 들려주는 지문이 길어지고 익숙한 내용이 아니다. 핵심을 잘 파악해서 대응을 해야 하는 듣기 문제다. 내가 국어를 배우던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말하기와 관련된 전략이 존재하지 않았다. 말하기 수업도 기억이 없다. 40대 이상은 이 부분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적 이해, 추론적 이해, 비판적 이해, 이 세 가지 영역에 대한 문제 유형을 미리 알고 가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한국어 능력시험을 보다 _ 어휘 어법
어휘와 어법은 그렇게 만만한 영역은 아니다. 고유어는 일상어와 달라서 공부하지 않으면 정확히 알고 있지 않은 것이 많다. 내 경우에도 시험을 보기 전에 고유어는 따로 공부를 했다. 내가 체크해 놓은 고유어를 보면 가납사니, 고샅, 곰배팔이, 괴괴하다 등 쉽지 않다. 그래도 재밌긴 하다. 구레나룻이 맞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한자어도 쉽지는 않다. 교왕과직, 공전절후, 간담상조 뜻도 알아야 한다. 한자어만 아는 것으로 되지 않고 고유어와 한자어가 같은 의미인 것을 연결해서 아는 것도 자주 출제된다. 우리 세대가 한자에는 강한 편이라 그나마 한자어가 좀 낫다.
한자어 뜻도 물어보고 한글의 뜻에 맞는 한자어의 의미를 물어보기도 한다. 동음이의어와 동의이음어도 알아야 한다. 게재와 결제 등 많이 틀리는 한자도 잘 나온다.
속담이나 한자 성어, 관용구도 봐야 한다. 속담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이다. 속담의 뜻을 단순히 물어보지는 않는다. 속담과 한자 성어의 뜻을 연결해서 묻는다. 역시 공부가 필요하다.
어법은 표준어, 맞춤법, 띄어쓰기, 문장 표현, 문법 요소, 문장 부호, 표준 발음법, 사이시옷, 외래어, 로마자 표기법 등이 주제다. 어법은 문항이 많고 짧은 문항인 만큼 어렵다. 모르면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 봐도 풀 수 없다. 외래어 표기는 쉬울 것 같으나 헷갈리거나 알리고 싶은 것을 출제함으로서 쉽지 않다.
어휘와 어법은 가장 많은 문제인 30개 문제가 출제되는 영역임으로 속도도 필요하고 정확성도 요구된다. 나는 의외로 여기서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 100문제 중 50번까지여서 11시까지 끝내는 것이 목표였는데 11시5분에야 끝낼 수 있었다. 문제는 답을 문제지에만 표시해두고 답지의 동그라미는 아직 하지 못했다. 동그라미치는 것도 의외로 시간이 걸리고 헷갈리면 밀려쓰기 쉽기도 하다. 잘해야 한다.
쓰기 영역은 15개 문제가 출제된다. 글쓰기 계획, 자료 활용 방안, 개요 수정 및 상세화 방안, 퇴고 등이 6개 주제로 한 주제에 2개, 3개 씩 문제가 출제된다. 난이도가 높지 않아서 시간을 벌 수 있는 영역이다. 글을 작성하기 위한 계획을 물어보는 문제가 나온다. 퇴고 문제로는 문장을 올바로 고쳐 쓰기가 나온다. 이번 시험에서는 문장 성분을 보충하는 문제가 나왔다. 다음에 들어가는 내용으로 적절한 것을 물었다. 부사어가 들어가야 하는 자리라고 기억한다.
창안 영역도 있다. 국어 교육에 있어 창안이라는 것도 내게는 낯설다. 우리 때에는 없던 영역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광고 카피 쓰기 같은 것이다. 창의적으로 언어를 활용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국어에서 창안 영역이다. 10개 문제가 두 가지 주제로 나뉘는데 시각 자료를 통한 내용 생성이 있고 다른 하는 조건에 따른 내용 생성이 있다. 표 같은 시각 자료를 보여주고 이 표에 대한 유비 추리를 통해 도출되는 결과를 답에 연결시켜야 한다. 말은 어려워도 해보면 안다. 설명문 등이 있고 이 설명문의 조건에 따른 유비 추리도 도출해야 한다.
읽기 영역은 30개의 문항이다. 현대시, 현대소설, 학술문, 설용문의 네 가지 영역의 출제 유형이 나온다. 시는 내포된 의미와 심리 상태, 시어의 역할 등을 문제로 다룬다. 현대소설은 작품의 이해와 감상, 그리고 서술상의 특징 및 효과를 문제로 다룬다. 학술문과 실용문은 사실적 이해, 추론적 이해, 비판적 이해를 물어본다. 실용문은 내가 가장 많이 쓰는 글인 보도자료가 자주 출제된다. 어렵지 않다. 추론적 이해라는 것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정보나 의미를 파악하는 문제다.
마지막 10문제가 가장 어렵다. 국어 문화인데 여기서 시간 뺏기면 답을 동그라미에 표시할 시간을 놓칠 수도 있다. 시험 종료 2-3분 전에는 전체 답안지에 빼먹은 것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국문학에 대한 문제는 고전과 현대를 오간다. 국어학에서 국어사도 출제된다. 국어의 역사는 당연히 훈민정음에 대한 문제가 자주 나오는 편이다.
국어학의 점자 문제가 이번에도 출제되었다. 점자 중에서 생략되는 것을 포함하여 맞는 것을 찾는 문제였다. 북한과 남한의 영문 표기 차이도 이번에 나왔는데 어려웠다.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전상국 소설 내용을 알려주고 어느 작품인지 맞추는 문제였는데 답이 아마도 ‘아베의 가족‘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100문제에 대한 시험이 끝난다. 나는 시간이 거의 정확히 끝냈다.
KBS 한국어 능력시험 보고 나서
한국어 능력시험을 보게 된 것은 직원들의 한국어 실력 때문이었다. 우리 일에는 글쓰기가 기본이다. 글의 구조도 중요하고 어휘력도 중요하다. 직원들의 한국어 실력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한국어 시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시험이 어떤지 궁금해서 우선 내가 먼저 시험을 봤다.
한국어 능력시험은 한국어를 보다 고급지게 구사하고 사용하고자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풍부한 어휘가 나의 상상력과 나의 세계관을 확장시켜준다. 마찬가지로 한글을 올바르게 구사한다는 것은 나의 몸값을 높이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일이다. KBS 한국어 능력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은 확실히 한국어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제 84회 KBS 한국어 능력시험은 4월21일 일요일이다. 이번만 토요일이었고 앞으로 2025년 시험은 모두 일요일에 있다. 이날 직원들을 다 보게 하려고 한다. 미리 준비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예정이다.
나처럼 시험본 지 오래된 한국인들도 한 번 KBS 한국어 능력시험을 보기를 권한다. 우리가 매일 쓰는 한국어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고 더 잘 쓰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동안 한국어 교육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와 함께 이 땅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들도 한국어를 배워서 우리와 소통하려면 이와 같은 한국어 능력시험을 볼 것이다.
KBS 한국어 능력시험 준비 팁
첫째로 수험서를 한 권 보면 좋다. 나는 에듀윌 책을 사서 준비했다. ‘2025년 최신판 에듀윌 KBS 한국어능력시험 한권끝장’을 시험 2개월 전에 구입하여 차근차근 준비했다. 이 책은 시험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그리고 시험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히 나와있다. 기출문제도 있어서 문제 출제 경향을 파악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35,000원이다. 이 책이 틀림없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꼭 사지 않아도 된다. 도서관에는 몇 년 전 이 책이 있어 그것을 빌려 보아도 된다.
둘째로는 모르거나 명확하지 않은 단어가 나올 때마다 사전을 찾아보면 좋다. 내 아이폰에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사이트가 즐겨찾기로 되어 있다. 단어장을 활용하려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넣고 들어가야 한다. 이번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많은 단어와 숙어를 찾아보았다. 정말 몰랐던 것은 단어장에 기록해두었다. 120개가 넘는다. 이 사전의 큰 장점은 예문이다. 고유어의 경우, 예문이 현대소설에서 나온다. 그 예문이 시험에도 그대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