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의 터줏대감 털보식당
함덕에 자주간다. 선흘1리에 아는 분 집이 있어 그곳에서 묵게 되니 식사는 주로 함덕해수욕장 근처에서 하게 된다. 그 전에 제주에 오면 송악산 부근이나 함덕 서우봉을 좋아해서 자주 다녔다. 둘 다 바닷길 트레킹 코스이다. 푸르른 제주 바다와 청정한 나무들의 피톤치드를 즐길 수 있는 천혜의 길들이다.
이중 서우봉에 올라 함덕의 낙조가 인상적이어서 오후 늦게 함덕에 간 적들이 있다. 함덕도 여느 제주 바다처럼 개발 붐이 불어 예전과는 달리 카페와 무슨 무슨 함덕점 같은 제주 내의 지점 음식점이나 국적불명의 인스타그램 맛집들이 많이 생겼다. 이십년 동안 함덕의 여러 음식점들의 명멸을 지켜보면서 여전히 뚝심있게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하는 곳이 바로 털보식당이다.
털보식당은 해수욕장 앞 버스터미널 바로 앞에 있다. 함덕의 가장 핫한 다운타운 한 가운데다. 함덕 오일장과 해수욕장 사이에 예각 삼각형으로 생긴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눈에 안 띨 수가 없다. 그리고 털보식당이라는 이름이 주는 로컬의 매력이 있다. 주변이 바뀌는 동안 털보식당의 간판은 그대로이다. 흑돼지 오겹살과 갈치조림이 유명한 음식점이다.
털보 김병효 사장님은 함덕초등학교 31회 출신이다. 어느 때 가보니 털보식당 앞에 함덕초 31회 동창회 간판이 붙어 있어서 알게 되었다. 1937년 함덕초가 생겼으니 아마도 68년 졸업했으니 일흔이 아직 안되셨다. 요식업중앙회 함덕지부장도 역임하셨다. 그 외에도 함덕에 터줏대감임을 알 수 있는 여러 상장과 표창장들이 음식점의 벽 하나를 채우고 있다. 음식 맛과 표창장은 비례한다. 일단 표창장이 많다는 것은 한 자리에서 오래 자리잡은 음식점이고 그 자리에서 단골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반 돼지고기와 달리 흑돼지는 개체수가 그리 많은 것이 아니다. 더더군다나 바다에서 잡아오는 갈치는 늘 퀄리티가 일정할 수 없다. 좋은 흑돼지를 공급받고 굵은 토막의 맛있는 갈치를 취급할 수 있으려면 괸당 사회인 제주에서는 당연히 저 정도의 지역 유지로서 명망이 있는 것이 유리하다. 내가 잘 가는 영천시장 순대국밥집 석교식당도 표창장이 즐비하다. 늘 줄 서서 기다려서 먹는 집이다. 마찬가지로 털보식당도 갈 때마다 놀라운 흑돼지 오겹살과 갈치의 퀄리티를 자랑한다.

함덕 넘버원 갈치조림과 흑돼지 오겹살 구이
흑돼지 오겹살 구이는 먹을 때마다 쫄깃한 식감에 놀란다. 육즙이 입 안에서 터지는 것도 도축한 후 웰 에이징된 숙성과 관계된다. 목살과 전지도 같이 먹게 되는데 오겹살이 유달리 쫄깃하고 입안에서의 살살 녹는다. 씹는 식감과 혀에서 느껴지는 감칠맛이 뛰어나다. 150그램에 2만원이니 돼지고기치고는 비싸다고 할 수 있는데 먹어보면 어떻게 다른지 확연히 느껴진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한라산 오리지널 노지 소주와 단짝이다.
갈치조림을 먹을 때 갈치 선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 군대에서는 세네갈에서 온 왕갈치 국도 먹었다. 제주에서는 모든 갈치가 신선하다. 그러니 선도는 다 최고라는 말이다. 지방 오일장에 가보면 서울 수퍼에서 처럼 시든 상추나 깻잎을 볼 수가 없다. 시든 것은 누구도 먹지 않고 밭에 가서 신선한 것을 따오면 되니까 굳이 시든 것을 싼 가격에 먹을 필요가 없다.
제주에서는 갈치도 모두 다 신선하다. 제주 사람들이 물 좋지 않은 갈치를 먹을리가 없다. 그러다 보니 선도를 넘어 맛있는 갈치가 있다는 것도 제주에서 알게 되었다. 제주산 은갈치라고 불리우는 것들인데 가격은 좀 되어도 맛은 끝내주게 고소하다. 잘 익히면 살이 기가막히게 잘 가시로부터 분리가 된다. 털보식당의 갈치조림이 그렇다.
국내 최고의 당근을 생산하는 구좌가 바로 옆이니 갈치조림에 들어가는 당근도 당근 맛있고 제주 무도 시원함이 최고다. 당연히 제주는 콩도 좋다. 그러니 두부도 맛있다. 쓰고보니 다 말이 좋아하는 야채들이다. 당근, 콩, 무 모두 최고의 흙에서 최고의 바람과 햇빛 속에 자란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이 제주 청정 바다에서 자란 은갈치를 만났으니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로컬 가족 식당 털보식당
자식과 친인척들도 같이 하고 있어 아침 7시부터 식사가 가능하고 저녁 늦게까지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 휴양지다 보니 거의 매일 영업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쉬는 날을 본 적이 없다. 반찬도 다 직접한 것들이어서 김치부터 맛있다. 조그만 게를 삶은 것이 있는데 칠게 볶음 반찬이다. 제주에서는 칠게를 방게라고 하는데 해녀들의 영양 간식이었단다. 나도 갈치조림이 나오기 전까지 안주로 두 접시는 늘 비운다. 칠게를 어떻게 볶았길래 집게발도 연하게 부셔진다. 키토산으로 몸을 채우는 느낌이다. 갈치를 다 먹고 당근, 무, 두부, 파를 다 먹고 남은 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면 이제 끝이다. 함덕 해안으로 나가 커피 한 잔하면 된다.
설 전날 갔는데 손자 손녀들이 와서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3개월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패치카 옆에 붙어서 털보 사장님에게 재롱을 부리고 있었다. 너 크는 거 보러도 또 와야겠다.
